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춘자네 집/계간 문학저널/2021년 겨울호

월송리 2022. 1. 1. 17:58

그 저의가 무엇이든 나는, 이 여인이 갑자기 낯설게 느껴졌다. 그녀는 술의 힘을 빌려 자기 자신의 모든 슬픔을 감추어버리겠다는 수작인가. 그 어미의 말본새는 내림굿처럼 딸에게로 전해졌는가. 그 어미가 한 맺히게 살았던 고통의 그림자를 춘자가 이어받은 셈인가. 적어도 나는 그동안 그녀가 어떻게 살아왔는지, 알지 못했다. 또 알았다고 해본들 어쩔 도리가 없다. 내가 춘자를 조금이라도 좋아했을까? 다만, 그녀에 대한 동정심이 어떤 연민의 그림자처럼 내 기억 저 아래에 숨어있었을 것이다. 춘자는 그렇게 말을 툭 던져놓고 겸연쩍었는지, 눈을 내리깔며 젓가락으로 식탁을 박박 긁어대고 있었다. 저가 한 말의 파장을 예견하지 못했을 리가 없을 텐데어설픈 침묵이 흘렀다. 낯이 화끈거렸는지 수습해보려고 철봉이가 한 마디 붙였다.

-술 취했어! , 그래?

-몰라! 나도 잘 모르겠어. 내 팔자가 왜 이런지.

중얼거리는 그녀의 말소리를 못 들을 뻔 했다. 나는 그녀가 막연한 불안 때문에 그러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. 그러자 물기가 번져 붉어진 그녀의 눈동자가 점점 크게 내게로 다가오는 듯 느껴졌다. 그리고 머릿속의 저 아래로 깊게 갈앉았던 기억의 파편들이 표표히 떠올랐다. 어슴푸레해서 잊을 뻔 했던 그 불완전한 기억들이 용케도 오스스 돋아 또렷하게 나타났다. 인화지에 박힌 낡은 흑백사진처럼.